사람중심헌법연구소장, 한국일보에 “일터로 간 10대에게 헌법 10조는 없다” 게재

[한국일보: 오피니언] “일터로 간 10대들에게 헌법 10조는 없다” (입력 2025.04.14 04:30 25면) 

한국일보 컬럼: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5041109570002980

정부는 청년 실업 문제 해소와 기술 인재 양성을 위해 직업계고 현장실습과 산업현장의 일학습병행제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독일식 직업교육 모델의 도입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전개되고 있다. “학생의 보호”보다는 “노동력 공급”에 가까운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일터에 배움의 열정이 살아 있어야, 일터로 간 10대 청소년들이 학습을 통해 성장해갈 수 있다. 최근 국제노동기구(ILO)는 한국의 청소년 현장실습 제도에 대해 노동권 침해 가능성을 지적하며, ILO 협약 위반 소지를 공식 언급했다.

직업계고 실습은 ‘교육과정의 일부’라는 명목으로 운영되지만, 실질적으로는 기업이 업무 성과를 기대하는 구조다. 학생은 근로계약 없이도 사실상 노동자로 기능하는 회색지대에 놓이며, 이는 헌법 제10조(인간의 존엄과 가치)와 충돌할 수 있다.

독일의 직업교육 프로그램(아우스빌둥·Ausbildung)은 지역 학교와 기업의 협력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국가는 인간 존엄을 존중하고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기본법이 자리한다. 독일에서 이 조항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교육·노동·복지 정책 전체를 관통하는 가치 기준이다. 아우스빌둥이 단순히 기능인 양성이 아닌, 청년이 사회 일원으로 존중받으며 성장하는 장치로 작동하는 이유다.

이러한 환경의 일터에서 청소년들은 동료와 책임을 분담하고,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며,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암묵지를 체득해야 한다. 그래야만 10대 청소년들에게 일은 고통이 아닌 즐거움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우리도 이제는 헌법적 기준 위에서 직업교육 제도를 설계할 때다. 정책은 늘 고용률이나 산업 경쟁력 중심으로 설계돼 왔으며, 청년이 원하는 삶은 종종 배제됐다. 한국은 헌법 제10조가 있음에도 실제 정책에서는 오히려 헌법 제119조 제2항(국가의 경제 규제와 조정 권한)이 방향성을 제공했다. 결과적으로 ‘경제 발전’이 ‘인간의 존엄’보다 우선시되는 구조가 형성됐던 셈이다.

반면, 독일은 국가의 존재 이유를 인간 존엄에 두고, 이 가치가 정책 전반의 최상위 기준이 되도록 헌법을 설계했다. 경제가 아닌 사람이 헌법의 중심 가치다. 일터로 간 10대들이 배움의 기회와 즐거움을 얻으려면, 무엇보다 헌법이 그들의 편에 서야 한다. 직업훈련제도를 제대로 고치기 위해서는 그 토대가 되는 헌법을 먼저 바꿔야 하는 이유다. 최근 현안으로 떠오른 개헌 논의에서, 권력구조 못지않게 해당 부분에 대한 진지한 고려가 필요해 보인다.

김희식 전 한국은행 선임연구위원·사람중심헌법연구소장

Leave a Comment